Taehoon Kim

carpedm20

July 10, 2018

틀에 박힌 고교생활에서 벗어나 대학의 자유로움을 느끼기 시작했을 때부터 사용하게 된 아이디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이 끊임없이 말했듯이 20대의 매일을 즐기자고 다짐하며 모든 계정을 바꿨다. 지금 돌아보면, 나의 대학 생활은 어느 정도 carpe diem 했던 것 같다. 등수나 학점에 연연하지 않고, 코딩 그 자체와 소소한 발전, 다양한 경험을 즐겼다.

하지만 학교를 떠나 군복무를 시작하면서, 나는 성취만을 행복으로 보고 매일을 즐기지 못했다. 첫 몇 달간 성장하지 않는 내 모습을 보며, 내가 버리게 될 2.8년을 최대한 가치 있게 보내기 위해 행동의 가성비를 계산하고 효율적인 삶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얼마나 인정해주는 가를 가치 판단의 척도로 삼고, 깃헙 스타, 페이스북 좋아요 수, 기업의 컨택 수 등 정량적이고 일반적인 기준에 집착했다. 내면적 가치 판단이 아니라 외부의 기준으로 나를 평가하면서 언제나 남들의 기대에 한참 못 미친다는 생각에 매일 스트레스를 받아왔다. 이렇게 관심 그 자체가 삶의 원동력인 관종이 되면서, 자존감은 끊임없이 떨어졌다.

그리고 나의 작디작은 그릇을 얼마나 키울 수 있는가, 내가 속한 우물을 얼마나 벗어날 수 있는가를 두 손으로 증명하고 싶었다, 나도 할 수 있다고. 거창하게 말했지만 결국 탑스쿨에 가는 것이 나의 세속적인 목표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성장이 정체되었다는 것을 느꼈고 그런 나를 들키고 싶지 않아서 성장과는 관련 없지만,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프로젝트들을 닥치는 대로 해왔다. 사람들은 내 거품을 칭찬했지만, 나는 그 거품이 꺼져버릴까 두려웠다.

그리고 결국 심판의 날이 왔고, 작년 12월 나는 대학원과 회사에 지원했다. 2월 초부터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메일을 확인했고, 무소식 혹은 불합격 메일을 보고 맥없이 다시 자곤 했다. 지난 2년간의 노력이 실패로 끝났고 모두의 기대를 저버렸다는 생각에 그냥 집안에 틀어박혀 있고 싶었다. 그 누구도 보고 싶지 않았고 얘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OpenAI 합격 메일을 받았을 때도 마냥 웃지 못했다. 이게 끝인가 싶었는데 역시 그게 끝이었다. 그렇게 지난 2년의 마침표를 찍었고 우울하기 짝이 없던 심판은 끝이 났다.

어쨌든 carpedm20.

지난 2년을 돌아보면, 나에겐 일과 컴퓨터뿐이었고 사람은 없었다. 인간관계를 등한시했고 가치관과 행복에 대한 질문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래서 미국을 가기 전에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것을 최대한 많이 하면서 나와 사람, 일상의 행복을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양한 사람과의 대화부터, 여행, 독서, 음악을 하며 부족한 점들을 채우려고 노력 중이다. 그 과정에서 내 심장을 다시 뛰게 해준, 하루하루를 즐기는, 새로운 경험을 공유하는, 부족한 관계를 깨닫게 해준 사람을 만나서 다행이고 행복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혼돈의 카오스가 지나갔다. 나를 컴퓨터의 세계로 인도해주신 분부터, 구현에 미치게 만들어 주신 분, 병특을 시작하게 만들어 준 술까지.. 인생의 방향을 정하게 도와주신 수많은 인연에 감사하고 또 다른 인연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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